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한 슈트라우스 3세 (문단 편집) == 사생활과 사후의 평가 == 1894년에 마리아 에밀리에 카롤리네 호퍼와 결혼해 2남 2녀를 뒀다. 이 중 차남 에두아르트는 출생 직후 사망했고, 나머지 자식들은 비교적 장수했지만 모두 음악과 관계 없는 직업을 택했다. 결국 아버지 에두아르트의 동생 요제프 에두아르트의 아들인 지휘자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 (2세)가 슈트라우스 가문의 음악가로서는 최후의 인물이 되었다. 다만 슈트라우스 가문의 족보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한 이들이나 문헌에서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 (2세)를 요한 3세의 아들로 잘못 소개한 경우도 있으니 주의. 슈트라우스 가문 최후의 작곡가이자 처음으로 음반을 취입한 인물이라는 상징성은 있지만, 가문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작곡가로서 남긴 작품들 대다수의 공연과 녹음 빈도가 지금도 매우 뜸한 상황이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신년음악회|신년음악회]] 무대에서도 선곡된 사례가 2022년 현재까지 전무한 실정이다.[* 오히려 칼 미햐엘 치러(1843 ~ 1922)등 다른 빈 음악 작곡가들의 무곡을 선택한 예가 많고 이 작곡가의 음악은 최근 자주 선택하는 실정이다.] 음반도 그나마 [[영국]] 등지에서 슈트라우스 가문의 춤곡을 담은 음반에 한두 곡 정도가 같이 실린 게 전부다. [[분류:오스트리아의 작곡가]][[분류:1866년 출생]][[분류:1939년 사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